[펌글] 기적을 믿으시나요?
기적을 믿으시나요?

언제부턴가 그 팀은 기적의 팀이라 불리기 시작했습니다. 9회 2사, 루상에는 아무도 없던 그 때, 10:5의 암담한 스코어에서 동점을 만들어내고 연장에서 기어이 승리했던 그 팀은 분명 기적의 팀이었습니다. 손가락이 부러진 4번타자가 홈런을 치고 열세에 몰린 채 맞은 한국시리즈에서 3연패 끝에 다시 3연승을 거두며 한국프로야구 사상 처음으로 리버스 스윕을 노리던 그 팀은 역시 기적의 팀이었습니다. 6:6 연장승부에서 10회초로 넘어가자마자 4실점으로 하면서 10:6으로 뒤진 그때, 10회말 기적의 팀은 단 하나의 아웃카운트도 없이 5득점을 하며 승리를 거뒀습니다. 잠실구장의 멀기만 한 펜스, 2사 만루 1점차로 지고 있던 상황에 2군 버스에서 졸고 있다가 입단 4년만에 처음으로 1군무대를 밟은 타자는 프로 데뷔 첫 타석 초구에 역전 만루홈런을 날렸습니다. 그 팀에는 무언가 항상 기적이 이루어질 것 같은 분위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 기적의 팀은 기적처럼 무너졌습니다. 02년 6월, 2위에 올랐던 그 팀은 후반기 처절하게 무너지며 결국 4강 진출을 실패합니다. 그리고 03년 그 팀은 개막 8연패를 당하며 결국 7위로 시즌을 마쳤습니다. 팀의 주축선수들은 그 팀을 많이도 떠났고 남은 선수들은 늙어갔습니다. 그리고 9년간 지켜주며 V2를 일궈주신 감독님마저 떠났습니다. 04년의 그 팀에 주목하던 이는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팀은 04년, 꼴찌후보라는 예상을 딛고 전반기 페넌트레이스에서 1위를 마크합니다. 여름이 되자 7연패에 빠진 그 팀에게 모두들 올 것이 왔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팀은 결국 3위로 시즌을 마쳤고 2년만에 포스트시즌을 다시 밟았습니다. 그리고 05년, 그 팀은 다시 꼴찌후보의 멍에를 안았습니다. 다승왕을 차지했던 외국인 선수도 떠났고 병역비리에 연루되어 불펜에서 거진 200이닝을 먹어주던 두 명의 핵심불펜과 마무리 투수를 잃었습니다. 야수진의 평균연령은 30대를 넘어선지 오래였고 팀의 4번타자는 겨울내내 은퇴선언을 하고 방황했습니다. 네, 그 팀은 바로 두산베어스입니다.

05년, 그 팀은 다시 전문가들의 예상을 뒤엎었습니다. 개막 후 줄곧 선두권을 달리고 있는 그 팀은 현재 15승 8패 1무로 1위에 반게임 차 뒤진 2위입니다. 그 팀이 5할이상의 승률을 올릴 줄은, 아니 제대로 된 시즌을 보내기나 할 수 있을지는 아무도 예상할 수 없었습니다. 붕괴된 투수진이 팀방어율 2위를 달릴 줄은 아무도 몰랐습니다. 입단 3년차의 새내기 마무리는 6세이브를 올리고 배팅볼 투수로 입단해 몇년을 절치부심한 고졸 6년차 선수가 팀의 핵심불펜이 될 지는 아무도 몰랐습니다. 열여덟 살, 어린 고졸 신인이 1.96의 방어율을 찍으며 2승을 올릴지도, 이제 구위가 예전만 못하다고 손가락질 받던 좌완 원포인트가 빛나는 선발변신을 할지 아무도 몰랐습니다.

그뿐인가요. 서른여섯의 1루수와 2루수는 3할을 때리며 팀 공격을 주도하고 있고 방황하던 4번타자는 드디어 제 자리에 돌아와 천재의 이름값을 합니다. 혹자는 이 팀의 타선에게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타선이 가지고 있던 이름을 붙입니다. 살인자의 타선. 그러나 시즌 전에는 아무도 예측하지 못했습니다.

사실, 성적이라는 것은 아무 것도 아니지요. 네. 예상하지 못했을 뿐 그럴 수도 있는 거니까요. 하지만 어제 경기에서 그들이 보여준 것은 단지 일상적인 것 만은 아니었습니다.

SK와의 문학전. 1회말 첫타자의 파울타구에 맞은 주전포수는 고통을 호소하다가 교체되었습니다. 그리고 백업포수는 2회초 첫 타석에서 손목에 사구를 맞았습니다. 고통을 참고 주루플레이를 하고 2회말의 수비까지 마친 백업포수는 더이상 견딜 수 없음을 호소합니다. 그 백업포수는 손목이 부러진 상태였습니다. 부러진 손목으로 공을 잡고 플레이를 계속 하고 있었습니다.

엔트리의 포수 둘이 모두 부상을 당하며 더이상 경기를 진행할 수조차 없어보이던 그 팀은 의외로 고졸 3년차 백업 유격수에게 포수장비를 입혀 내보냈습니다. 그리고 원더보이 나주환은 3회부터 9회까지 포수의 자리를 지켰습니다. 중학 1학년때 포수를 본 경험이 전부인 원더보이는 실점위기에서 도루저지를 하면서 실점을 막았고 결국 4:2의 승리를 지켜냈습니다. 서른여섯의 산전수전을 다 겪은 변화구 전문 외국인 투수는 이 낯선 포수에게 자신의 구종을 제한받으면서 승리투수가 되었습니다. 프로에 데뷔한지는 8년이 되었지만 단 한번도 로스터에 자기 이름을 꾸준히 올려보지 못한 2군의 제왕은 동점 홈런을 터뜨렸고 언제나 기적의 순간에 이름을 올리곤 하던 주전 2루수는 역전 스리런 홈런을 터뜨리며 팀 승리를 견인했습니다.

팬으로서, 차라리 몰수패를 바라고 싶었던 암담한 경기를 승리로 이끌어낸 순간 마운드로 올라선 원더보이에게 내외야의 모든 선수들은 앞다투어 포옹을 했다고 합니다. 경기 내내 조마조마했던 선배들의 품에 안긴 원더보이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요. 그리고 경기가 종료되던 그 순간, 문자중계를 지켜보던 저 조차 '경기종료'라는 네 글자가 중계창에 뜨는 순간 온몸의 힘이 다 빠져버리는 느낌이었습니다.

기적은, 네, 기적은 바로 이럴 때 갑자기 일어납니다. 가장 암담한 그 순간 기적은 소리없이 내려옵니다. 경기가 진행되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인데 그 경기에서 승리를 얻은 것은 기적 그 이상입니다. 한국프로야구에서 유일하게 자신의 팀명에 미라클 이라는 수식어를 붙일 수 있는 팀, 미라클 베어스는 어제도 기적을 일궈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만이 기적일까요. 이제 야구팬이 된지 이십사년에 접어든 저는 일년에 오십 여일이 넘는 저녁마다 야구장 스탠드에 앉아 매일같이 기적을 봅니다. 가장 잘 치는 타자가 기껏해야 세 번에 한번쯤 안타를 칠 수 있고 보통의 타자들은 너댓번 쯤에 한번 안타를 칠 수 있는 것이 바로 야구지요. 확률의 게임인 야구에서 연속안타가 나오고 득점이 이루어지는 순간, 기적을 봅니다. 모든 타자가 10할을 칠 수 없고 모든 투수의 방어율이 0이 될 수 없는 야구라는 게임에서 아무리 잘치는 타자라도 세번에 두번쯤은 실망할 준비를 해야하는 것, 아무리 잘하는 투수라도 2~3실점 쯤은 눈감고 넘어가야 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겠지요. 애써 담담하게 실망할 준비를 하는 페시미스트 야구팬에게 열광을 선사하는 기적은 야구팬의 가슴을 두방망이질 치게 합니다.

모든 스포츠에는 기적의 순간들이 존재합니다. 야구 뿐은 아니겠지요. 역전 홈런이 펜스를 넘어가는 그 짜릿한 느낌은 스포츠를 아는 모든 팬들에게 한번은 느껴본 적이 있는 그런 감동일 겁니다. 그러나 승리에 익숙해질수록, 그런 기적의 순간들에 점점 둔감해집니다. 기적이 당연해지기 시작할때, 1승의 소중함을, 1구의 소중함을 잊기 시작할때부터 야구는 재미없어집니다. 투수의 손끝을 떠나는 공 하나에 긴장감이 사라지기 시작할 때 야구팬은 그저 승리에만 배고프고 불만에 가득차기 마련이죠. 매일매일의 기적을 당연하게 여기기 시작하면 어떤 기적에도 팬은 항상 불만을 토로할 뿐, 즐기는 것이 불가능해집니다.

내가 사랑하는 기적의 팀은 지난 24년간 많은 아픔과 좌절의 시간들을 겪었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들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습니다. 다른 팀에 비해 턱도 없이 얇은 선수층, 병역비리 파문에 얼룩진 로스터, 노령의 타자들과 경험없는 투수진. 내일이라도 당장 연패에 빠져 곤두박질 칠 지도 모르는 팀입니다. 그러기에 오늘의 승리에, 오늘의 기적에 더더욱 빠져듭니다. 연패를 해도 연승을 해도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변치 않지만 그들의 승리가 그들에게 힘을 주기에 더더욱 그들의 승리에 열렬히 기뻐하고 환호합니다. 그들이 기적을 보여주는 한, 그들은 내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눈에 보이는 기적들은 얼마나 작은 것인지. 단지 경기 결과로 보여지는 그 찰라의 순간들 뒤에서 기적을 꿈꾸며 땀을 흩뿌리는 그들이기 때문에 그들의 기적은 더욱 경건하게 받아들여집니다. 잠실에서 경기가 끝나고 야구장을 돌아나오면 경기가 끝난 후에도 배팅 연습장에서 들려오는 타구음. 그 소리를 들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언제나 그렇듯이 나를 뒤돌아 보게 됩니다. 눈에 보이는 것이 얼마나 작은 것인지, 그것을 알게 된 것은 그들 덕분이었고 이 때문에 나 또한 내 삶의 영역에서 눈에 보이는 것에만 현혹되지 않고 살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들이 타석에 들어서는 순간, 마운드에서 와인드업을 하는 그 순간, 하늘높이 솟구치는 타구의 끝에서 글러브를 치켜드는 그 순간, 그 순간마다 그들 때문에 언제나 기도하는 마음이었던 것을 그들도 알까요. 언제부터인가 관전의 순간들은 늘 기도의 순간이었습니다. 기도가 이루어질 때도, 이루어지지 않을 때도 그들을 의심하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꼴찌를 달리던 1위를 달리던 그들을 여전히 사랑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로 인해 내가 배우고 그들로 인해 나 또한 내 삶에 진지해 질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단지 그들이 기적을 보여주기 때문만이 아니라, 내 삶의 시간을 기도로 채우는 것이 그들 때문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내 종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이제 더이상 미래를 기약할 수 없는 노장 선수들, 짧은 기회에 모든 것을 쏟아부어야 하는 신인들, 모든 부담을 어깨에 짊어져야 하는 팀의 기둥들, 그리고 언제든 사표를 가슴속에 간직하고 살아야 하는 코칭스텝들. 한 순간의 기회를 움켜쥐지 않으면 손안의 새 처럼 날아가버리는 비정한 승부의 세계에서 현재를 살아가는 그들 때문에 난 웃고 울고 슬퍼하고 기뻐하고 내 삶을 뒤돌아봅니다. 그들처럼 내게도 기회가 주어질 때 그것을 움켜잡았었는지, 후회로 가득찬 지난 날들을 되돌아 보지만 그래도 그들처럼 나또한 또다시 기회가 올 것이라는 것을 믿고 그들처럼 그 순간을 기다립니다. 그래서 스포츠팬인 나는 남들보다 더 많은 인생을 살게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기적을 믿으십니까? 네, 저는 기적을 믿습니다. 그리고 그 크고 작은 기적 뒤에 숨어있는 것들을, 그들을 향한 내 기도를 믿습니다.

글쓴이 : 故 eunie2님
by 유니나래 | 2009/03/12 22:37 | 야구 몰라요 | 트랙백 | 덧글(1)
사고가 아닌 명백한 인재(人災)
http://imnews.imbc.com/replay/nwdesk/article/2299808_2687.html

불이 난건 어쩔 수 없었다 쳐도

인명부터 구해야 되는게 당연한게 아닌가.

불을 끄는게 급했다고?

 

에어매트만 펼쳤어도 그분은 무사히 구조되었을 거다.

당신들 가족의 일이었어도 그렇게 무책임하게 굴었을까?

 

아직 하셔야 할 일들, 보셔야 할 것들이 너무도 많은데

정말이지 너무도 아까운 분이 허망하게 떠나고 말았다.

일면식도, 깊은 친분도 없는 내가 이렇게 억울하고 분한데

그분의 가족들, 지인들의 마음은 어떨지...

 

이제 다시는 만날 수 없다는 게 믿기지 않는

너무도 익숙했던 그 이름.

 

eunie2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by 유니나래 | 2009/03/12 22:34 | 할말은 하고살자 | 트랙백 | 덧글(2)
임창정 11집 트랙리스트를 보다가
CD 1
01 . 너란 사람은
02 . 원하던 안 원하던
03 . 오랜만이야
04 . 그때가 그리워요
05 . 그대 생각하며 한번 웃고
06 . 결혼전야
07 . 가슴에 고인 이름
08 . 현주에게
09 . 슬픈 연인
10 . 혼자가 아닌 걸 - feat. 리쌍
11 . To Your X-Boyfriend
12 . In The Club - feat. JED


난 어쩔 수 없는 맞춤법 오덕;인가 보다.
저게 눈에 확 들어오다니-_-;

[원하든 안 원하든]인데
작사한 사람이 누군지는 몰라도 저런 실수를 하다니.
(실수라는 걸 알기나 한다면 그나마 다행;)

선택은 '~든' (내가 이걸 하든 말든 뭔 상관이여?)
행동 또는 과정은 '~던' (책을 읽던 중에)이다.

요새 인터넷 상의 글을 읽다보면 
역할은 거의 십중팔구 '역활'이고, 심지어는 분할도 '분활'로 쓰더라;

부정의 의미 '안'은 무조건 '않'으로 쓰고.
(않되는 데요. 않하는 것 같아요 등등)  

한글이 어렵다 탓하지 말고 
영어에 쓰는 신경의 1/10이라도 좀 써주길. 
by 유니나래 | 2009/03/05 23:19 | 할말은 하고살자 | 트랙백 | 덧글(6)